보도자료

#1. 조모(13)양은 5년 전 박모(38)씨를 새엄마로 맞이하면서부터 끔찍한 나날을 보냈다. 박씨는 남편이 출근 등으로 집을 비우면 별 이유 없이 손찌검을 하거나 막대 등으로 때렸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A지역아동보호기관은 2005년 6월 조양을 보호하며 멍든 동심을 치료한 뒤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박씨는 시간이 지나자 조양에게 걸핏하면 폭언과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급기야 조양은 자신의 방에서 대·소변을 본 뒤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버리는 등 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A기관은 지난해 12월 조양에 대한 학대 신고가 들어오자 상황이 심각함을 파악한 뒤 부모한테서 격리보호 조치를 했다.

#2. 김모(11)양은 지난해 11월 B지역아동보호기관에서 다시 도움의 손길을 받았다. 아버지(42)의 심한 폭행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아버지 김씨는 부인이 집을 나간 뒤 딸한테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을 강요했고, 딸이 맘에 안 들면 손이나 대걸레 자루로 마구 때렸다. 김씨는 전에도 자녀학대 문제로 딸과 함께 아동보호기관에서 상담을 받았었지만 몹쓸 짓을 그만두지 않았다.

자녀학대 사실이 적발돼 담당 기관의 조치를 받은 부모가 다시 학대를 가한 사레들이다. 이런 ‘아동 재학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례만 지난해 581건이나 됐다.

31일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학대 피해아동은 5685명에 이른다. 결국 학대 피해아동의 10명 중 1명이 재학대를 당한 셈이다. 아동학대가 주로 가정에서 이뤄지다보니 적발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동 학대나 재학대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통계를 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와 피해 사실이 확인된 아동은 모두 3만8074명이었다. 이 중 84.4%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학대 장소는 가정이 압도적이었다. 올 들어서도 지난 6월 기준 학대 피해 아동은 벌써 3000명가량 된다.

하지만 200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8년6개월 동안 아동학대가 문제가 돼 법원에서 친권 제한이나 상실 판결이 난 사례는 고작 9건뿐이다. 상당수 아동 학대가 부모에 의해 자행되고, 전체 피해 아동 중 10% 정도가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심각한 학대를 겪는 것으로 알려진 점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친권 제한과 상실은 학대가 심한 부모한테서 아동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조치로서 피해 아동의 친족과 검사, 관할 시·도지사가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법원 판결이 나면 피해 아동은 아동복지시설이나 ‘그룹 홈’, ‘위탁가정’ 등을 통해 보호된다.

한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친권 간섭을 막는 제도적 장벽이 두껍고, ‘아무리 그래도 자식은 부모 손에서 크는 게 낫다’는 사회 통념이 강해 청구율 자체가 낮고 청구해도 승인 판결을 받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보완 장치가 제대로 마련돼 있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 중에는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치료를 강제할 수 없고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도 가해자가 거부하면 아무 소용 없다. 전문기관이 아이 안전을 위해 보호하려 해도 부모가 친권을 내세워 요구하면 아이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전국 16개 시·도에 45곳뿐이고, 광주·대구·대전·울산은 1곳, 경남·전남·충남도는 2곳 뿐이다 보니 사후관리도 제대로 안 된다. 기관마다 상담원은 6∼12명에 그쳐 새로 접수한 사건만 챙기기에도 바쁘다보니 한번 돌려보낸 아동의 재학대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은 아동학대 가해자 취업 제한과 재학대 방지를 위한 친권 상실, 피해 아동과 가족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학대피해아동 보호·지원 및 행위자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을 조만간 발의할 계획이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